[시승기] 뒷바퀴를 굴려라, 애스턴마틴 DB11 & 메르세데스 벤츠 E 400 카브리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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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자동차는 뒷바퀴굴림이었다. 훌륭한 핸들링과 짜릿한 드리프트, 근사한 디자인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뒷바퀴굴림 차의 매력이다.
뒷바퀴굴림은 자동차의 가장 오래된 형태다. 최초의 대중차 포드 모델 T가 뒷바퀴굴림 차였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앞바퀴굴림 소형차가 많아지기 전까지 대부분의 승용차는 뒷바퀴굴림이었다. 뒷바퀴굴림 차는 보통 엔진을 앞에 얹고, 드라이브 샤프트를 통해 뒷바퀴를 굴린다. 구조가 간단해서 비교적 만들기가 쉽다. 또 차의 앞뒤 무게배분을 50:50으로 할 수 있어 핸들링이 좋다. 고성능 차에서 뒷바퀴굴림은 밸런스가 좋다. 급가속 땐 무게중심이 뒤로 가면서 구동 바퀴를 눌러 접지력이 좋고, 무게중심의 변화를 만들기 쉬운 편이다. 뒷바퀴굴림은 코너에서 오버스티어 성향을 보이는데, 이건 카운터 스티어로 조절이 가능해 언더스티어보다 극복하기 쉽다.
앞바퀴굴림은 앞바퀴가 조향과 구동 모두를 담당해 부담이 되는 반면 엔진이 구동 바퀴를 눌러 빙판길에서 트랙션이 좋다. 뒷바퀴굴림은 미끄러운 노면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앞에 엔진을 얹은 경우 무거운 엔진을 가벼운 뒷바퀴가 미는 방식이라 눈길에서 주행 안정성이 떨어진다. 미끄러운 길에서 뒷바퀴굴림 차를 능숙하게 다루는 운전자는 흔치 않다. 뒷바퀴굴림은 엔진을 세로로 배치해 차의 좌우 밸런스가 좋기에 급격한 출발에도 토크 스티어가 일어나지 않는다. 뒷바퀴굴림 차는 엔진을 앞은 물론 가운데나 뒤에도 얹을 수 있어 다양한 설계가 가능하다. 엔진을 가운데나 뒤에 얹을 땐 대체로 가로배치 엔진이 된다.
앞바퀴굴림과 뒷바퀴굴림은 각각 장단점이 있어 어느 차가 좋다고 할 수 없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나에게 맞는 차를 찾아야 한다. 앞바퀴굴림 차는 보통 250마력 정도까지 견딜 수 있다. 그보다 큰 힘은 뒷바퀴굴림이나 네바퀴굴림으로 할 수밖에 없다. 더 큰 힘과 더 큰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뒷바퀴굴림 차는 스포츠카와 고급 리무진, 트럭 등에 두루 사용된다. 오늘 시승차는 최고출력 510마력의 애스턴마틴 DB11과 최고출력 333마력의 메르세데스 벤츠 E 400 카브리올레다. 둘 다 고출력이라 앞바퀴굴림은 가당치 않다.
애스턴마틴 DB11
슈퍼카로 불리는 애스턴마틴은 세련되고 우아하며 관능적이다. 낮게 퍼진 자태가 심장을 멎게 할 정도다. 얼마 전 애스턴마틴과 함께 찍은 영화배우 김혜수의 사진을 봤는데, 그녀가 그렇게 멋져 보인 적이 없었다. 애스턴마틴의 위력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DB11 디자인은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알루미늄 보디를 두른 DB11은 ‘롱노즈 숏데크’ 스타일로, 유러피언 그랜드 투어러의 전형을 보여준다. 앞으로 수그린 애스턴마틴 고유의 프런트 그릴에 야성이 살아 있다. 보닛이 스르르 닫히는 차에 귀족적인 분위기가 서렸다. 도어가 슬쩍 날개를 펼치는 스완 윙은 슈퍼카의 속내를 암시한다.
애스턴마틴은 지금의 CEO 앤디 팔머의 경영 아래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거듭나는 중이다. 어떤 차보다 멋진 DB11을 보면서 지금이 애스턴마틴의 100년 역사에서 감히 전성기라 말하고 싶다. 실내는 온통 가죽으로 감쌌다. 장인의 손길로 빚은 차는 가죽에서 자신감을 내보인다. 가죽 모서리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길이 느껴진다. 핸드메이드는 어설프다는 뜻이 아니라 정성스럽게 만들어 희소가치를 간직한다는 말이다.
그랜드 투어러인 만큼 대시보드 디자인은 점잖다. 계기반은 비교적 간단해서 오직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다. 센터페시아에 자리한 변속버튼이 조금 생소한데, 운전 중 변속은 커다란 패들시프트로 하게 된다. 뒷자리는 사람이 앉을 자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앞 시트 등받이를 젖히기 위한 여유 공간이다. 가방이라도 슬쩍 던져놓으면 괜찮다. 작은 트렁크에는 값비싼 전용 가방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다.
DB11은 프런트 미드십 엔진에, 트랜스미션을 뒷바퀴 액슬 쪽에 붙여 앞뒤 무게배분을 50:50으로 만들었다. 엔진은 최고출력 510마력을 내는 메르세데스 AMG GT의 V8 4.0ℓ 트윈터보를 얹었다. 벤츠 엔진에 대한 신뢰는 DB11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진다. 1년에 5000대 정도를 만드는 작은 회사(?) 제품에 확실한 보증이 더해졌다. 510마력짜리 슈퍼카답게 0→시속 100km 가속을 4초에 해치우며, 최고속도는 시속 300km에 달한다.
우선 GT 모드로 달렸다. 보통의 승용차와 다를 바 없이 조용하고 안락하다. 그러다 주행모드가 바뀌면 차의 성격이 확 달라진다. 스포츠 모드에서 울리는 의외의 사운드가 포르쉐나 페라리만큼이나 재미지다. 영국 신사의 일탈이 시작된다. 울컥거리는 ZF 8단 변속기의 반응이 거친 만큼 나를 자극한다.
애스턴마틴은 달리는 감각이 유별나다. 바닥에 착 들러붙어 달리는데, 공명상자 같은 울림 속에 폭발적인 가속을 이어간다. 운전대는 가볍고 예리해서 나의 조작에 순간적으로 반응하고, 브레이크 조절이 자연스럽다. 참 다루기 편한 슈퍼카다. 가벼운 차를 폭발적인 힘으로 쏘아대며 달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이 더해진다. 그 매력을 아는 순간 애스턴마틴이 100년 넘게 지속된 이유를 알았다. 슈퍼카는 저마다 매력을 지닌다. 애스턴마틴 역시 자신만의 개성이 분명하다.
DB11을 타고 유럽의 고급 휴양지를 돌아다니는 나를 상상한다. 고속으로 달리는 나의 그랜드 투어러는 물론 뒷바퀴굴림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차를 타려면 대문에서 현관까지 5분 정도는 드라이브해야 하는 저택을 먼저 마련해야할 것 같다.
메르세데스 벤츠 E 400 카브리올레
뒷바퀴굴림 차는 앞 오버행을 짧게 할 수 있어 멋진 디자인이 가능하다. 차 앞쪽으로 바짝 다가선 메르세데스 벤츠 E 400 카브리올레의 앞바퀴는 웅크린 치타의 앞발 같다. 앞 오버행이 대체로 긴 앞바퀴굴림 차들과 구별되는 뒷바퀴굴림 차만의 자랑이다. 너무 크지도, 그렇다고 너무 작지도 않은 E 클래스 보디가 적절하다. 짙은 녹색의 시승차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모습이다. 테일램프가 S 클래스 쿠페의 뒷모습을 닮아 신분 상승을 노렸다. 벤츠 엠블럼이 주는 럭셔리 감각과 쿠페 보디의 유려한 맛에 어딘가 모를 침착함을 더했다.
천으로 된 지붕은 어떤 지붕보다 우아하다. 그 세련된 감성을 하드톱이 따를 수 없다. 내구성을 걱정하면 고급차를 탈 여유가 안 되는 거다. 롤스로이스를 비롯해 많은 고급 컨버터블이 천으로 된 지붕을 고집했다. 천으로 된 지붕은 가볍고, 따라서 지붕을 열고 닫을 때마다 차의 무게중심 변화가 크지 않다. 스포티한 감성을 지닌 차일수록 천으로 된 지붕을 얹는 이유다. 뒷바퀴굴림 차인 E 400의 지붕을 벗기면 무게가 뒤로 가면서 뒷바퀴를 좀 더 눌러 가속성능이 좋아질까? 이론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크게 느낄 순 없을 거다. 천으로 된 지붕은 하드톱에 비해 트렁크 공간도 넉넉하다.
지붕을 벗긴 차는 타기 전부터 화려한 실내가 돋보인다. 익숙한 E 클래스의 대시보드에 크롬과 가죽을 양껏 둘렀다. 황토색 가죽시트는 멋과 실용을 모두 갖췄다. 틀로 찍어낸 것 같은 시트는 최상의 품질을 보는 것 같다. 애스턴마틴에서 옮겨 타니 상대적으로 시트 포지션이 높다. DB11보다 실용적인 차가 분명하다. 운전석 뒤에서 손(?)이 뻗어 나와 안전벨트를 건네준다. 황송할 따름이다. 바닥 한가운데 드라이브 샤프트가 지나는 터널이 불룩 솟았지만 그 때문에 비좁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시승차는 구형처럼 C 클래스가 아닌 E 클래스 플랫폼으로 만들어 온전한 4인승이 됐다.
V6 엔진이 직렬 4기통과 다른 점은 토크가 좋고, 차가 부드러우며 여유롭다는 것이다. 1600rpm부터 시작되는 48.9kg·m의 최대토크 덕에 2톤의 무게도 가볍게 느껴진다. 고성능보다는 럭셔리한 주행감각에 초점을 맞춘 엔진이다. 0→시속 100km 가속 시간 5.5초, 최고속도 시속 250km, 복합연비 9.9km/ℓ. 모든 수치가 벤츠의 위용을 보여주는 데 적절하다.
에어 서스펜션의 에어 보디 컨트롤은 주행감각이 도드라진다. 차원이 다른 부드러움 속에 온몸이 나른하다. 운전대는 가볍고 두루뭉술한데 박차고 나가는 힘을 지녔다. 조향만을 담당하는 앞바퀴의 회전반경이 작은 것 또한 뒷바퀴굴림 차의 장점이다. 다섯 가지 주행모드 중에서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바꾸자 서스펜션이 단단해지고 엔진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바뀐다. 운전대도 빠릿빠릿해지고, 스포츠 서스펜션은 엉덩이를 통통 튀긴다. 차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 대의 차에 재미가 여러 가지다.
지붕을 벗기면 뒤쪽에서 루버가 튀어 오르고, 뒤 시트의 윈드 디플렉터가 올라와 함께 에어 캡을 만든다. 실내로 바람이 들이치는 것을 막는 거다. 컨버터블은 바람에 머릿결이 헝클어지는 맛도 좋지만 벤츠의 고급스러움이 당신을 바람 맞도록 놔두지 않는다. 목 뒤로 에어 스카프가 더운 바람을 불어댄다. 비 오는 날 카브리올레의 세 겹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낭만적이다. E 400 카브리올레의 매력은 고급스러움과 고성능의 화려함에 있었다.
글_박규철(편집위원)
출처 - 모터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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